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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빈은 기록이 하고 싶어서(20대를 정리하며) - 두 번째 이야기 본문

나의 하루들,

이예빈은 기록이 하고 싶어서(20대를 정리하며) - 두 번째 이야기

젊은날의 B, 2020. 3. 5.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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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시작되는 내 인생의 제2의 서막, 베트남 생존기이다. 나는 세종학당재단이라는 기관을 통해 재단 파견 교원으로 베트남 호찌민에 가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쪽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생소하게 들리는 기관일 수 있는데, 세종학당재단은 국외 한국어 교육과 한국문화를 알리기 위해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쉽게 말하자면 국내가 아닌 해외에서 외국인들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알리는 기관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이므로 세종학당을 통해 파견이 된다면 준공무원 자격이 주어진다. 이번 일기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의 이야기인데, 절반은 베트남 호찌민에서 있었던 이야기.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원 생활을 하며 보낸 이야기들이다. 

2016년 

1지망으로 독일을 지원하려고 했는데, 어찌저찌 되어 호찌민3세종학당으로 지원을 하게 되었다. 교육이 끝난 후 파견지가 정해지는데 1지망이었던 곳으로 발령이 났다. 운이 좋았다. 신규 학당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학당장님 그리고 대학 측에서 고용한 현지 교원, 운영 요원 등 모두 다 좋은 분들을 만나 정말 행복하게 일할 수 있었다. 속내를 들여다 보면 그렇지 않은 학당들이 더 많다. 이곳은 매일 아침 출근 풍경, 나는 호찌민 고밥군에 있는 호찌민산업대학교 안에 위치한 곳에서 근무를 했다. 

처음 갔을 때에 문화 수업을 편성해 주셔서 한번도 문화 수업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조금 당황스러웠는데, 붓글씨 쓰기 수업을 위해 방에서 계속 연습을 하고 지우개 파서 전각 도장도 만들고 어리다고 학생들이 무시할까 봐(?) 흠.. 무시라는 표현은 좀 그렇고 나이가 어린 선생님이라 학생들이 수업에 노련하지 않다고 생각할까 봐 더 악물고 수업 준비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준비를 해도 실수를 했고 부족함을 느낄 때마다 스스로 속상함을 많이 느끼는 성격이라 일에 있어서는 완벽해지고 싶은 욕심이 많다는 걸 느꼈던 것 같다. 그래도 좋은 학생들을 만나 정말 행복했다. 초반에는 적응하고 수업 준비를 하는 것에 온 힘을 다 했던 것 같다. 

두 번째 무이네. 4월인가.. 한 달쯤 지나니 여유가 생겨서 떠났다. 하노이에 파견이 된 동갑내기 선생님이 호찌민에 오셔서 같이 갔는데, 일하는 사람이랑은 함께 여행을 가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닫고 옴.. 빌라 아리아를 가려다가 가격이 너무 높아져서 로터스 빌리지에 갔는데, 여기도 좋았다. 무이네는 혼자서 멍 때리기 좋은 곳인데 옆에서 쉴 수도 없게 떠드는 스타일의 분과 함께라서 편히 쉬지 못했다. 그 이후엔 거의 혼자 돌아다닌 듯. 혼자 다니는 게 편해. 

세종학당은 문화체육관광부 산하기관이라 매주 마지막주 수요일엔 항상 문화 수업을 하고 결과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비빔밥 만들기를 할 땐 애들이 계란 후라이에 어찌나 공을 들이던지.. 하트, 별, 달, 캐릭터 등등 기상천외한 비빔밥들이 많이 탄생했다. 사물놀이, 한글 꾸미기, 한복 종이접기, 삼계탕 만들기 등등.. 나 정말 요리 못하는데 울며 겨자먹기로 매번 연습해서 가르쳤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요리했나 싶다. 너무 똥손으로 가르쳐서 너무 미안하네. 

그리고 그 해의 4월 말쯤 윤지언니가 호찌민으로 놀러 왔다. 내 1빠 손님. 🧡 둘이서 처음 한 해외여행이었다. 더운 식당에서 먹었던 김치볶음밥도, 칠바의 귀염둥이 가드도. 이젠 모두 추억으로 남았지. 둘이서 무이네도 갔는데 하필 베트남 연휴와 겹쳐서 최악의 슬리핑 버스를 탔다. 그래도 무이네에서 여유를 즐겼지. 호찌민으로 돌아와서도 입에 안 맞는 음식들 때문에 고생한 언니. 탈선을 꿈꿨던 우리는 여자 둘이서 정말 건전하게 놀았다. 

그 다음 손님은 예고 없이 갑자기 등장한 중학교 친구들. 혜진 다정 은수. 강철 체력들이 몰려 와서 솔직히 걱정이 컸다. 

제일 먼저 데려간 곳은 내가 무조건 데려가는 루프탑 바. chill bar도 데려가고 air 360도 데려가고. Air360에서는 완전 셀럽 놀이를 했지. 삼일 연속 루프탑 바만 다닌 우리요..

물론 곳곳 호찌민 유명 관광지들도 둘러봤다. 사실 호찌민은 그리 크지 않아서 하루면 시내 관광을 다 한다. 내 친구들은 뭐든 가리지 않는 단순한 아이들이기 때문에 음식도 마음대로 다 먹이고. 술도 밤새도록 마시고. 재미있게 놀다가 갔다. 

이렇게 보니 날 보러 참 많은 사람들이 호찌민에 와 주었네. 세 번째 손님은 수식이언니. 이때 한참 세무소에서 일할 때라 탈세 도우미. ㅠㅠ 결국 이직에 성공한 언니. 내 부적 때문인거 알지?

언니랑도 무이네 가서 푹 쉬고. 빌라 아리아는 내 최애 리조트다 진짜. 💕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선배드에 누워 쉬다가 맥주도 마시고. 햇빛도 쬐고. 리조트 안에서 마사지도 받고. 최고였다. 게다가 수식이언니는 다 잘 먹었다.. 내가 놀랄 만큼 나보다 베트남 음식을 더 잘 먹었으.. 

새벽에는 지프타고 선라이즈 투어도 했지. 이때 만났던 지프 기사가 참 좋았던 것 같다. 요즘 너무 대놓고 돈 요구하고 그래서 별로던데. 이렇게 보니 일만 안 하고 논 것 같지만. 열심히 일하고 그 사이 사이 지인들이 와 줘서 너무나 힘이 되고 즐거웠다. 근데 뭔가 떠나고 나면 또 다시 혼자 남았다는 슬픔이. 나를 더 외롭게 했던 것 같다.

학생들이 준비해 준 26살 생일 케이크. 베트남 느낌 물씬 나는 케이크 🍰🧁 생일 선물로 내가 제일 좋아한다고 했던 망고스틴을 한 바구니 가득 받았다. 장미꽃이랑 픽까지 손수 만들어서 선물해줬던 아이들. 내가 아이들에게 주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학생들에게서 받은 것 같다. 참... 돌이켜보면 더 잘 가르치지 못해 항상 미안한 마음이 든다. 

베트남에서의 첫 생일엔 다낭과 호이안을 갔다. 유급휴가를 써서 말이다!!!!!! 두 번째 다낭&호이안.. 첫 번째는 주연이랑 갔었는데, 그때보다 많이 달라져있었다. 호이안에서 묵었던 숙소가 생각보다 엄청 큰 리조트에다가 생일이라고 조식먹을 때 꽃다발이랑 노래를 불러줬었는데.. 너무 부끄러웠다. 

다낭에서는 멜리아 리조트를 갔는데. 나름 내 선물이라고 나에게 주는 선물. 더 레벨룸으로 예약했다. 지금 생각하면 진짜 욜로처럼 나한테 아낌없이 돈 썼네. 대단하다 이예빈..

이때쯤 자꾸 혼자 돌아다니고, 혼자서 하는 거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할 때쯤이었는데. 약간 우울증이 온 것 같다. 매일 집에서 혼자 술 마시고 울고... 블로그에 똥글 쓰고. 잘 버티고 있다고, 타지 생활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의 병이 생긴 것 같다. 매일 혼자하는 생활이 편하기도 했지만, 누군가와 가까워질 수 없는 이방인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어서 일까. 

매번 장을 볼 때면 제일 먼저 카트에 실었던 맥주 한 박스. 그런 내 우울을 눈치채 준 한 학생이 있었다. 아마 이 학생이 아니었다면... 진짜 베트남 생활을 버티기 힘들었을거다. 처음 맡았던 수업부터 마지막 수업까지 함께 해 준 학생인데. 내가 힘들 때마다 도와주고, 나이는 나보다 한참 어리지만 이 어린 학생한테 내가 얼마나 기댔는지 모르겠다. 내가 해줄 수 있는게 맛있는 거 사주는 거 밖에 없어서 너무 미안했다. 

그러던 중 좋아하는 걸 만들어 보기로 결심했다. 이왕 여기서 사는 거. 남들에게는 오지 못하는 쉽지 않은 기회이고, 해외 생활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니 마냥 이렇게 우울감에 젖어 살 순 없다고 생각했다. 제일 먼저 시작한 건 좋아하는 음식 만들기. 사실 베트남 음식을 몇 번 먹고 매번 장염에 걸려서 베트남 음식도 현지 로컬식은 먹지 못했다. 평일엔 맛있는 과일로 위로를 받기로 했다. 그 과일이 바로 분홍색 구아바! 이거 진짜 맛있는데. 흐규규..

집에만 있지 말고, 주말마다 활동적으로 움직이기. 사실 뭘 배워보려고 했지만 평일에 출퇴근 시간이 오후 1시부터 9시까지 수업이 있기 때문에 뭘 하기가 상당히 애매한 시간이었다. 그래서 많이 걷고, 느끼고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보기로 했다. 

좋아하는 식물, 좋아하는 꽃을 보러 카페를 많이 다녔다. 레슨을 할 수 있는 꽃집들도 찾아봤지만 꽃집은 정말 하나같이 다 내 마음에 안 드는데.. 카페 어레인지먼트는 누가 하길래 이렇게 예쁜건지 정말 의문이었다. 

그리곤 마음에 드는 피부 관리샵을 찾았다. VICHY Vietnam에서 운영하는 피부 관리샵인데. 한국과 비슷한 가격이었지만 그래도 뭐라도 해야 기분이 좋아질 것 같아서 회원권을 끊었다. 여기 블랙헤드 하나는 정말 잘 뽑아줬는데..

타카시마야 백화점에 있는 달랏헤즈팜. 여기는 그래도 나름 예쁜 꽃들을 만나볼 수 있다. 하지만 사악한 가격^^ 장미나 국화와 같은 종류를 많이 팔고 있다. 베트남은 정말 장미는 싼 듯.

베트남어 과외도 시작했는데, 과외 선생님한테 오토바이로 꽃시장에 좀 데려다 달라고 내가 직접 주소를 찍어줬다. 탄항 씨 고마워요.. 내가 더 잘해줬어야 했는데. 흑흑. 이때부턴 다시 베트남이 좋아졌던 것 같다. 뭐든 내가 마음 먹기 나름이라고. 씩씩하게 잘 이겨낸 것 같다.

비타민도 잘 챙겨 먹고. 이땐 이너뷰티까지 다 챙겨 먹었구나. 이때 약간 마인드가 좀 이기적으로 바뀐 것 같다. 모든 내 위주로 생각하고. 내 몸은 내가 챙긴다. 나는 나만 지킬 수 있다. 뭐 이런 생각들이 강해졌다. 

여태껏 살면서 단수, 정전이라는 불편함을 전혀 못 겪고 살았는데. 이땐 정말 정전을 몇 번이나 겪었는지. 와이파이도 잘 안되고. 갑자기 성취도 평가를 보는 도중에 정전이 되었는데. 난 속으로 몹시 당황했는데,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휴대폰을 꺼내 플래시를 키고 시험을 보더라는.. 너무 신기한 광경이었다. 

2016년의 내 모습. 그렇게 슬럼프를 잘 이겨내고 1년 더 재단 파견 교원을 하기로 결정을 했다. 다행히 운영 기관에서도 나를 좋게 평가해주셔서 같은 곳에서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다. 사실 1년 더 연장을 하더라도 기관에서 원하지 않으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해야 한다. 부족했던 부분들을 현지 교원님께서 잘 보다듬어 주셨고, 학생들도 내가 잘 버텨낼 수 있도록 힘을 주었기 때문에 내가 더 잘하려고 노력을 했었다.

고마운 학생들이 너무 많다. 그리고 정말 의아하게도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은 모두 여자였다. 나 여자한테 인기 많은 스타일인가. 😂😂😂😂

그러던 중 거의 흡사 먹방 모임과 비슷한 91년생 호찌민 양띠 모임이 생겼다. 각종 맛집 투어를 하는 모임이랄까. 다들 술을 좋아하기도 해서 그냥 주말마다 시간 맞으면 만나서 밥 먹고 술 마시고 했던 것 같다. 원래는 20대 모임이 있었는데 거긴 완전 외로운 외노자들의 모임과 비슷해서 몇 번 나가다가 안 나갔다. 거기서 안 맞다고 생각한 91년생들끼리의 모임.. 여기서 재희라는 친구를 만나 계속 붙어 다녔지. 재희도 알린을 좋아해서 너무 놀랐고 무엇보다 나와 취향이 잘 맞았다.

그렇게 2016년이 끝나가면서 힘든 일들이 많이 생겼다. 젊은 시절 내가 항상 빛나게 응원해줬던 사람이 1년 넘게 투병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눈을 떠 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연락이 와 있었다. 모두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나에게 해 주고 있었다. 집에만 있으면 너무 우울해질 것 같아 무이네로 떠났다. 이렇게 보면 무이네는 정말 멍하니 혼자 생각하러 가는 나만의 도피처인 것 같다. 나쁘게 헤어진 사람이 아니라 항상 마음 속으로 잘 되길 응원하고 있었다. 취업을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가끔 생일 축하를 핑계로 주고 받은 안부에서도 나한테는 아프다는 얘기를 한 마디도 하지 않았던 사람이고. 내 병문안을 원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모르는 척 하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친구를 통해 발 딛을 틈없이 조문이 끊이질 않았다는 얘기를 듣고서 좋은 사람이었구나라는게 또 실감이 났다.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항상 나만 바라봐주며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고 나의 모난 부분들을 다듬어주고 빛날 수 있도록 함께 해준 사람이다. 지난번 일기에 다들 나보고 열심히 살았다고 해주었는데, 솔직히 말하면 그 사람이 없었다면 그렇게 열심히 살 수 없었을 것이다. 이미 끝난 인연이었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서 나를 많이 발전시켜준 고마운 사람이었다. 

 

2017년

매주 주말마다 보던 호찌민의 야경. 익숙한 풍경이었는데 지금 사진으로 보니 굉장히 낯선 느낌. 익숙한데 낯설다. 지금은 랜드마크72라는 더 큰 건물이 생겨 더 화려한 야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 같다. 기회가 되면 올해 호찌민에 한번 가 보고 싶다. 

설날을 맞아 학교가 3주나 쉬어서 비자도 연장해야 하고 이것저것 시간이 생겨 한국에 잠시 들어갔다. 1년 만에 돌아가는 한국. 신기한게 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문에 모두 이런 종이를 붙여놨는데. 이게 뭐냐고 물으니까 혹시 도둑이 들까봐 이렇게 표시를 해 놓는다고. 누가 문을 열었는지 안 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그냥.. cctv를 설치하면 되잖아... 세콤이런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나라만의 방식이니. 신기했다. 

내가 한참 빠져있던 라파엘로랑 말린 망고, 사이공 스퀘어에서 산 고야드 카드지갑을 기념품으로 챙겨 한국으로.

3주라는 짧은 시간동안 가족, 친구들과 함께하는 시간들을 가졌다. 보고 싶었던 사람들, 모두 봐서 좋았다. 윤지언니, 수식이언니, 보경이, 중학교 친구들, 엄마, 민영이 모두 내가 힘들 때 힘든 해외 생활을 버틸 수 있게 버팀목이 되어준 사람들. 고마워 내 인생에서 절대 잊지 않을게. 

사람들만 만난게 아니라 그동안 하고 싶었던 플라워 레슨도 듣고, 케이크도 만들고. 하고 싶은 취미 생활들 다 하고 와서 참 알찬 한국 여행을 한 기분이었다. 다시 돌아올 땐 뭔가 고향에 가는 느낌이었다. 

다시 시작된 2017년 호찌민 일상. 쉬다가 오니 다시 할 일들이 많아졌다. 새롭게 개강도 하고, 베트남에 재단에서 직접 운영하는 세종학당 본부가 생겨 가 봤는데, 무슨.. 파우더룸에 쿠킹 클래스가 열릴 법한 주방까지.. 이런 곳에서 수업을 한다면 정말 행복하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여러분.. 여기는 헬입니다.. 위치랑 시설만 좋아요....)

그 해에는 재외국민이라 사전 투표 신청을 하고 영사관에 가서 투표도 했다. 같이 일하던 한국인 선생님과 함께. 내가 아플 때 참 많이 챙겨주셨는데, 내가 살던 곳이 정전이 될 때면 같이 우리집에 가서 자자고 선뜻 먼저 말씀도 해주시고.. 여자 혼자 호텔 가면 위험하다고.. (저 혼자 호텔 많이 다녔는데요..)

그리고 베트남 황금 연휴엔 재희와 함께 홍콩에 갔다. 호찌민에서 홍콩으로 가는 케세이퍼시픽 항공편이 황금 연휴인데도 15만원이라 너무 싸다며 대뜸 예약을 하고 떠났다. 무료로 좌석도 업그레이드 받고. 디즈니랜드도 가고 다 좋다가 마카오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렸다..... 히하...핳하하... 그래서 그냥 홍콩 애플 스토어가서 하나 샀다 ^^ 소리도 안 나고 너무 좋았다. 그리고 맛있는 음식도 많이 먹고. 즐거운 홍콩 여행이었다. 그리고 나는 홍콩을 가면 자꾸 뭘 잃어버리는 걸 보니 홍콩이랑 나랑 안 맞나 봐... 휴대폰을 잃어버려서 홍콩 사진이 많이 없다.. 너무 슬프다...

여기는 다낭 핑크 성당 아니고 호찌민에 있는 핑크 성당이고요. 떤 띤 성당이었나? 아무튼 피부관리샵 바로 맡은 편에 있어서 여기도 유명해지기 전에 예뻐서 그냥 사진 찍었는데, 짠내 투어가 다녀간 뒤로 핫플레이스가 되었다고 한다.. 

한번 끊어 놓은 회원권을 2년 내내 썼다. 50만원 주고 2년 피부관리 받은 거면 잘한 것 같다. 생각해보면 이때 피부 진짜 좋았던 것 같다. 역시 피부 관리를 받아야 고운 피부를 유지할 수 있다. 셀프 케어는 한계가 있어. 

매일 출근 사진을 찍어서 언니들한테 보내줬는데, 언니들이 나한테 '호치민 패리스 힐튼'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평일엔 열심히 수업을 하고. 지금보니 셀카들이 베트남 스타일이네. 

주말엔 집 근처 스타벅스에 가서 제일 좋아하는 테라스 자리에서 책도 읽고, 노을을 보고. 이마트 가서 장보고 집에 가서 이불 빨래하고 배딩 바꾸고. 그레이&네이비 스트라이프 버전과 핑크&그레이 토끼 버전이 있는데. 우리집에 와 본 사람이면 다들 알쥬??????????? 이때부턴 좀 안정적인 생활을 한 것 같다. 정말 일상생활. 

베트남에도 드디어 자라가 생겼다. 한국보다 조금 저렴한 가격. 그래서 자라에 가서 쇼핑도 하고. 심심하면 가서 옷 입어 보고. 혼자 놀기의 고수가 되었다.

부지런하게 카페도 다니면서 살았다. 맛집들도 많이 다니고. 그리고 또 호찌민 일상 중에서 빠질 수 없는 두 사람이 있는데.... 그건 바로!!!!!!!!!!

예훈 언니와 듁 오빠.. 처음 만났을 땐 두 사람은 부부는 아니었지만. 이젠 부부가 된 두 사람. 히히. 그 사이에 눈치 없는 나. 항상 두 사람의 데이트에 함께 해도 환영해주고.. 주말마다 예훈언니를 불러 내 데이트를 했지만 이해해주던 듁오빠.. 나 진짜 눈치 없었네. (없는 척 했던 걸 수도)

집에도 초대해서 내가 좋아하는 떡볶이도 해주고.. 맥주도 무한 리필이라며 맘껏 마시라고.. 엉엉 천사 같던 두 사람. 듁 오빠가 근데 왜 자꾸 예빈이 올 때마다 우리 떡볶이만 먹냐고.. 두 사람도 책을 좋아하고 이것저것 정신적인 지주였다. 예훈언니와는 흡사 독서 토론 모임이었고, 듁오빠와는 영어 스피킹 과외 같은 느낌.. 내 자존감의 근원 🥰 난 결혼한다면 정말 이 두 부부처럼 살고 싶다!!!!! 내 워너비 부부. 두 사람이 같이 테니스 칠 때마다 부부가 저렇게 취미와 좋아하는 운동이 같으니 정말 보기 좋구나라고 생각을 했었다. 어쩌면 내가 테니스를 배우는데 큰 원인 제공을 한 두 사람.

베트남에서의 두 번째 생일을 맞아 주말에 아이들이 생일 파티를 해줬다. 깜짝으로! 너무너무 예쁜 그림을 직접 그려서 선물도 해주고. 케이크에 레터링도 직접 했나보다. 정말 내가 제일 아끼는 제자들이 다 모여서 생일 파티를 해줘서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서 생일 파티로 했다. 내 호찌민 단짝 재희랑. 아쉽게도 예훈언니랑 듁오빠는 못 왔다. 호찌민에서 가장 핫한 곳에서 생일 파티를 했다. 탕진잼. 이제 내 인생에서 저렇게 흥청망청한 생일 파티는 없을거야...

그러나 막상 생일 당일은 혼자였다. (사실 혼자가 아닌 혼자, 혼자인 것만도 못한 둘) 퇴근하고 9시 좀 넘는 시간에 나가서 좋아하는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싶었는데. 이날 아마 아주 긴 글을 썼던 것 같다. 감수성에 젖어서. 사랑하는 가족들, 언니들, 친구들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갑자기 울컥했던 날. 

그리고 호치민에서 처음 플라워 레슨을 했던 날. 좋아하는 카페였던 루진의 플라워 어레인지를 담당하고 계신 분이었는데, 매번 인스타에서 영어로만 업로드를 해서 외국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엄청 아름다운 한국인 아주머니셨다. 레슨은 프라이빗으로만 진행하고 계셔서 원데이 레슨을 들을 기회가 없었는데, 내가 계속 팬이라고 해서 직접 DM을 주셨다. 예훈언니와 함께 레슨을 받았는데, 레슨 받는 사람들이 다 너무 예뻐서 여기 얼굴보고 수강생 뽑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승무원 분들이 많았고, 아줌마라고 믿기지 않는 미모의 주부님들. 그리고 외국인 분들 몇 명. 외국인 분들이 계셔서 수업은 영어로 진행되었다. 너무너무 멋진 여자들이 많다는 걸 또 깨달았지.... 

그리고 어느덧 베트남 생활의 막바지로 가고 있을 때 쯤, 교실에서 하던 수료식을 강당을 빌려 수료식을 할 만큼 수강생들이 많아졌다. 신규 학당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모두 좋은 분들을 만나 학당이 발전할 수 있었던 것 같고, 그 영광의 순간에 내가 함께여서 너무 감사했다. 언제나 홍보와 PPT는 내 담당.

이맘때쯤 새로 생긴 루프탑바. SOHY.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9월의 어느 날에 중학교 친구들이 또 놀러왔다. 그래서 애들 공항에서 픽업하고 바로 여기로!

수전증 있는 친구들이 찍어준 내 사진. 

몇 번째 무이네지.. 이젠 진짜 마지막 무이네라고 생각하고 무이네에서 제일 비싼 리조트를 예약했다. 더클리프. 방도 넓고 화장실도 크고, 룸 안에 정원도 있고 자쿠지도 있고 선배드도 있고.. 그리고 수건으로 엄청 귀여운 강아지도 만들어서침대 위에 올려져 있었다. 

아무거나 잘 먹는 친구들. 아무데나 데리고 가도 다 만족해하는 친구들. 여행 메이트로는 최고다. 

이때 눈썹 왜 이러지. 이땐 이 모양에 꽂혔었나..? 수영복 욕심이 많았던 이때. 베트남 여자애들이 노출엔 엄청 관대한 편이라 나도 이땐 약간 노출병에 걸린듯. 물론 베트남 여자애들에 비하면 약과였지만. (ㅠㅠ)

친구들 껌딱지. 지금도 껌딱지. 내 초딩 친구 기믄수.

귀신 아니고 제 친구예요..

지프투어. 레드 샌듄에서 처음 썰매 타는 아이들을 보았다. 그게 내 친구라니.. 위험하다고 말해도 아랑곳하지 않았던 너희들. 

분명 셋이었는데 한 명은 비행기표를 잘못 예약해서 먼저 떠났다. 진짜 인생 코미디다. 그래서 둘이서 호치민에서 여유롭게 호캉스. 반미 러버는 계속 반미를 찾아댔다. 그렇게 몇 개월 뒤에 만나자라는 인사를 뒤로 하고. 나는 다시 일상으로.

나는 여전히 평일엔 한국어 선생님이었고 마지막 주 수요일엔 문화 수업을 했고, 2년 동안 똑같은 패턴인 듯 했지만 내가 내 일을 사랑할 수 있게 된 시간들이었다. 그리고 한글날 행사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서포트 해주는 역할을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열정적으로 준비를 해 준 학생들 덕분에 행사도 무사히 잘 마쳤고 마지막으로 하는 큰 행사였는데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하는 내내 행복한 한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리고 한글날이 있던 주말에는 호치민에 있는 대학교 한국어학과들이 모여 한글날 행사를 진행하였다. 국뽕에 취했던날. 특히 저 한복 패션쇼는 학생들이 한지로 모두 손수 만든 한복이었다. 

뒤늦게 많이 친해진 예훈언니와 귀여운 물개가 있던 수제맥주집. 그리고 2차는 ENVY. 2017년에 ENVY 진짜 많이 갔다..

아침엔 예훈언니 집 사랑방에서 일어나.. (ㅋㅋㅋ) 언니 오빠와 같이 모닝 커피를 마시고.. 곧 언니 오빠가 여행을 떠나서 파인애플 튜브를 샀다고 한번 테스트 해보던 사진. 그리고 브이로그를 하는 언니 뒤를 총총 따라 다니며 둘이서 또 데이트. 이게 언니와의 데이트 패턴이었다. 

예쁜 카페와 편집샵 돌아다니기. 언니가 얼른 다시 브이로그를 했으면 좋겠다. 

하노이에서 워크숍이 있었다. 생각보다 좋은 호텔을 잡아주셔서 너무너무 호강했지이. 스위트룸이었다. 호텔 바로 옆에 스타벅스도 있고. 

교원 면담 시간에 근처 롯데 호텔에 가서 일탈도 즐기고. 

워크숍 마지막 만찬 때 같이 일하는 선생님이 나를 이렇게 도촬도 해 주셨다. 나 공주 같다고.. 예쁜 선생님 떠나실 때 학생들 여럿 울거라고.. 

같이 일했던 선생님들. 내가 싹싹한 편이 아니어서 아직도 막 살갑게 연락하고 그렇지는 않아도 항상 마음 속으론 언제나 감사한 마음 가득입니다. 특히 2년 내내 함께 했던 이한지 선생님. 마지막에 많이 배우고 감사했다고 인사할 때 초반에 너무 부족해서 신세만 많이 진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사과도 했는데. 나이를 불문하고 "좋은 파트너였습니다."라는 말이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할로윈. 거하게 취했던 날. 이날의 예빈 쎄게 맞아야 한다 정말. 그래도 젊은 시절 이런 예쁜 악마 사진 하나 쯤은 괜찮잖아...?

마지막 수료식. 아이들이 갑자기 깜짝 영상이랑 노래 불러줘서 눈물 펑펑.. 편지까지 직접 써서 읽어주는 바람에 화장 다 지워지고 난리. 다들 부족한 선생님 잘 따라와주고 믿어줘서 고마웠어요. 덕분에 지금까지 이렇게 올 수 있었던 것 같아. 더 잘 가르치지 못해 항상 미안하고 다음에 만나면 더 많은 배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게.

2년 동안 함께 해 준 아이들. 처음 이 곳에 왔을 때부터 떠날 때까지 내 힘이자 버팀목이 되어줬던 아이들. 자모부터 시작했던 우리가 마지막에 울고 웃으면서 한국어로 대화하기까지. 너무나도 기적같은 일들이. 우리가 함께여서 그랬던 거 아닐까. 좋은 제자들이었고. 내 평생 가장 기억에 남을 제자들이야. 🧡 (이건 진심) 공항 배웅까지 해줬던 아이들. 내가 정말 고맙고 사랑해. 

마지막 출근. 부족했던 제가. 그래도 한국어 선생님으로 성장할 수 있게 옆에서 많은 도움을 주신 선생님들. 한국에 오니 서로 도우면서 성장해간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달았다. 타지에서 서로 잘 버틸 수 있게 도와주신 선생님들, 정말 감사했습니다. 

한국으로 오기 마지막 주말,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붕따우로.

개경주(?)가 유명하다고 해서 한번 봤는데 내 스타일은 아닌걸로. 

Ms. LEE라고.... Mr.아니라고.. 따뜻한 뱅쇼와 맛있었던 크리스마스 디너 뷔페. 

해산물을 고르면 바로 요리를 해 주고, 파스타도 직접 면이랑 재료, 소스를 고를 수 있어서 좋았다. 사진엔 없지만 야외 바베큐장에서 원하는 스테이크도 골라서 가져가서 먹으면 됨. 아.. 이래서 베트남 살이에서 못 헤어 나온다. 

서로에게 감사함을 느꼈던 우리. 정말 좋은 학생들과 동료들을 만나 2년 동안 행복한 시간들을 보냈다. 물론 금전적으로 많이 모으지 못해 아쉬움이 없지 않아 있지만 더 값진 경험과 인연들을 얻었으니 더 없이 행복했다. 그리고 내가 나를 더 많이 사랑하고 생각하며 아끼게 된 시간들이었다. 나 자신에 대해 많이 고심하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내면이 더 강해졌다고 할까. 항상 다짐하던 '내가 보기에도 멋진 내가 되기', '먼훗날 돌아보았을 때 후회없는 날 보내기'를 이루었다. 지금 봐도 멋있었다. 열심히 수업 준비도 하고, 열심히 놀기도 하고. 젊은 날 청춘을 후회없이 보냈다. 

 

2018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오던 날. 허겁지겁 택시가 안 잡혀서 공항까지 늦을 뻔 했는데, 공항 입구에서 또 몰래 기다리고 있던 학생들을 보고 제대로 인사도 못하고 출국장에 들어왔는데, 갑자기 눈물 펑펑. 출국 심사하는데도 왜 우냐고 물어봐서. I don't know why I'm crying이라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후회없는 날을 보내고 다시 돌아가서 그동안 수고한 나에게. 그리고 고마웠던 사람들을 위한 눈물이 아니었나 싶다. 

오자마자 갑자기 몸살에 걸려 집에서 요양하다가 첫 외출은 바로 융디 언니.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여기야~ 라는 로맨틱한 메시지 카드와 함께. 취향저격 핑크 꽃다발. 롤러커피 첫 입문.. 완전 신세계였다. 

그리고 웰컴백 파티. 볼살 꽁쥬 이즈 캠백. 

그리고 윤지언니와 함께 떠난 제주도 여행. 이날 저녁에 노트에 서로에게 바라는 점, 서로가 만났으면 하는 사람(이땐 둘다 남자친구 없었을 때)를 쓰고 바꿔보고 그랬는데. 좋은 추억이었다. 역시 함께 있으면 즐거워. 

보경이 생일파티 하러 도쿄도 가고. 디즈니랜드도 가고. 보경이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니 생일파티 하러 도쿄 간거야.. 알지?

간만에 한국으로 돌아와 보고 싶었던 사람들과 즐거운 시간도 보내고, 

그동안 하고 싶었던 취미 생활도 맘껏 하며 한국 일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대학원생이 되었다. 대학원 입학과 동시에 취업도 했다. 아침 9시부터 출근을 해서 저녁 9시까지 대학원 수업도 듣고. 생각보다 힘들었던 한국 생활 ^^ 그래도 귀염둥이 학생들을 만나 수업을 들어가면 칠판에 개구쟁이 같은 낙서들을 보며 힘을 냈다. 주말에는 교안을 쓰고 대학원 과제도 하고. 진짜.....흠들으따...

봄이 오고, 2년 만에 벚꽃을 봤다. 

학교에서 꽃놀이를 했다. 벚꽃을 보며 산책하다가 가르치는 학생들도 만나고. 바쁘게 지내는 일상이었지만 행복했다. 

엄친딸이 결혼을 하는데, 함 들어오는 날. 나에게 부탁을 했다. 생각보다 신랑 친구들이 안 와서 기다린다고 지쳤다. 박도 깨고 돈길도 깔아주고. 즐거운 추억이었다. 이때 피부가 왜 이렇게 좋지...?

어마어마했던 함. 결혼이 이렇게 허례허식.......아.. 아니다.. 여기까지.. (ㅋㅋㅋ)

엄마친구들과 나. 이날도 결혼 안 하냐고 남자친구 안 사귀냐고 얼마나 잔소리를 들었던지 ^^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수식이언니가 결혼을 했다. 초스피드로 조카까지.... 작약 부케의 주인공은 바로 나. 

벨루가 보러 서울 갔던 날. 물론 난 혼자가 아니였다. 석원이오빠랑 윤지언니랑. 우린 거의 한 가족이나 다름없었으니. 

그러던 중 엄마가 암에 걸렸다. 한 달 만에 겨우 수술을 잡고, 14시간이라는 시간 끝에 수술 끝에 본 엄마는 눈물없이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태어나 그렇게 약한 엄마의 모습을 처음 봤다. 다행히 방학 기간에 엄마가 입원을 해서 수술이 끝나고 2주 정도는 이모가 간병을 해줬고, 나머지 한 달은 내가 서울에 가서 병간호를 했다. 다리에 있던 뼈를 이식해서 턱을 복원하는 수술을 했기 때문에 걸을 수가 없어서 재활을 하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서로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시간들이었다. 

엄마랑 같이 병원에 있으면서 사랑니도 뽑았다. 양쪽 다 신경과 닿아있어서 대학병원에서 뽑았어야 했는데, 병간호 하면서 뽑으면 나도 입원한 것 같은 느낌이니까. 

수술을 하고 볼이 아주 심술궃게 부었다. 멍도 들고. 사랑니가 이렇게 아픈거구나.... 아니 대체 평소랑 똑같은 볼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모야.... 아침에 일어나서 혹부리영감인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두 번째 사랑니를 뺐을 땐 엄마 주치의가 뽑아줘서 그런지.. 덜 아팠다. 엄마 주치의 잘생겼었는데.................. 회진만 기다려질 정도로.. 내 수술실에 원래 다른 수련의였는데 갑자기 엄마 주치의가 들어와서 자기가 뽑아주겠다고 해서 나 심쿵했잖아!!!!!!!!! 이거 그린라이트 아니냐고!!!!!!!!!!!!!!!!! 

그 사이 엄마는 스스로 침대에서 일어나고, 걷는 연습도 하고, 계단 오르락 내리락 하는 연습도 했다. 힘든 하루하루였지만 잘 이겨낸 우리 엄마가 너무너무 자랑스러웠다.

드디어 퇴원도 하고, 비록 암 부분을 잘라내면서 턱 한 쪽을 없애고 재건하는 수술을 해서 인공 턱을 가지고 평생을 살아야한다. 신경도 반쯤 날아가 잘 느끼지 못한다. 특히나 맛이나 어떤 감각들도. 그래도 우리 엄마가 살아있음에 늘 감사하다.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계속 내 곁에 있어줬으면 좋겠다. 

힘든 순간에도 내 생일을 잊지 않고 챙겨준 사람들, 그리고 내가 무너지지 않고 힘낼 수 있도록 걱정해주고 응원해준 사람들. 모두모두 고마워. 정말 내 든든한 내 편들이 있어서 외롭지 않았다. 엄마 병원까지 와 준 친구들도 너무 고마워. 

주변에 이렇게 든든한 사람들이 있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매번 더 잘하겠다고 말하는데 잘하고 있는지는 항상 의문이다. 내가 행여나 못 챙기더라도 내 마음은 늘 알아 주세요. 

정말이지 힘들고 길었던 여름이었다. 여름이 지나갈 무렵, 다시 개강을 했다. 

소소하게 가족들끼리 한 아빠의 환갑 파티. 요양병원에 있던 엄마도 외출을 하고 한정식 집에서 가족끼리 모여서 식사를 하며 보냈다. 모두 아프지 말고 건강만 하자.  

가을이 오고, 2년 만에 본 단풍. 

가을이 시작될 무렵, 새로운 생명이 탄생을 했고.

그리고 중학교 친구들과 떠난 여행. 엄청 웃고 떠들었던 여행. 늦가을에 수영장은 너무 추웠다. 밤새도록 노는 내 친구들 체력 로브트... 애들아 너흰 제발 좀 늙어라.. 밤에 잠도 안 자고 블루투스 마이크로 월드 투어 콘서트 했던 아이들....... 잊지 못해

엄마는 겨울이 되도록 산좋고 물좋고 공기 좋은 요양병원에 있었다. 갑상선 쪽에도 조그마한 종양이 보여서 또 한번 수술을 했다. 간단한 수술이라 생각했는데, 엄마는 많이 불안하고 무서웠나보다. 나이가 먹어도 여린 여자의 마음이겠지.  

크리스마스 때 A형 독감에 걸렸다.. 엄마도 없는 집에서 혼자 아픈건 너무나도 힘든 일이었다. 그때 든든하게 지켜준 남자친구이자 내 주치의. 예쁜 꽃을 들고 뛰어오던 그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병원에서 훔쳐온 약도(ㅋㅋ)

2018년은 너무나도 힘든 해였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고, 대학원 생활과 새 직장에서 적응하는 것도 게다가 갑작스러운 엄마의 암 선고와 수술도. 모두 감당하기에 힘들었는데. 나도 멘탈이 강해졌는지 받아들이고 덤덤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했던 것 같다. 아마 호치민에서 혼자서 타지 생활하며 단단해진 것 같다. 하지만 가족의 일은 덤덤해지기 힘들다. 아무 일 없이 지나가기만을 매일 바라고 있다. 

 

2019년

취향은 다르지만 생각은 같은 언니와 함께 부산여행도 떠나고. 해운대에서 이상한 갈매기남도 보고.. 해성막창 웨이팅 줄 멀리서 보고 야 빽빽~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그리고 이때 차 멀미 장난아니였으.. 매년 같이 여행하자고 약속했는데 올해도 꼭 함께 하자. 

봄에는 출근길이 튤립으로 가득했다. 

봄처럼 아름다웠던 순간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순간들.  

요양병원에서 나온 엄마는 다시 집으로 왔고. 엄마와의 시간도 보내려고 노력했다. 생각하는 만큼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했는데. 많은 시간도 중요하지만 함께하는 시간동안 진솔한 대화를 나누는게 중요한 것 같다. 

같이 대학원 수업을 듣는 박사 친구가 생겼다. 따뜻한 마음씨가 늘 부러운 친구다. 그리고 캠퍼스에 다시 봄이 찾아왔다. 

어학당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나고, 수업에도 자신감이 붙었다. 과거에 했던 수업 자료들을 보면 부끄러울 만큼 스스로 보기에도 많이 발전을 했나보다. 예전 자료들을 보면 이걸로 대체 어떻게 수업을 한거지..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학교에서 여러 행사도 있었고, 학회 때문에 바쁜 나날들도 있었다. 

 수국을 보러 갔던 태종대. 이른 여름 휴가. 

여름엔 내 생일도 어김없이 찾아왔고, 알린 케이크는 내 취향저격. 💚💙💜

맥문동이라는 걸 태어나서 처음 봤다. 이렇게 아름다운걸 처음 봤다니..

무더운 여름, 워터밤도 함께 갔다. 올해도 또 가고 싶다. 살빼서 아주 몸매가 드러나는 옷을 입고. 엄청 좋은 물총을 들고. 

친구들과 여름엔 방콕 여행도 떠났다. 왓아룬의 야경은 너무나도 예뻤고, 커피 팩토리의 커피는 너무 맛있었고. 팟타이도원없이 먹고 왔다. 개인적으로 똠양꿍은 굉장히 싫어한다.... 

윤종신에게 반해서 온.. 3시간 내내 노래로 꽉꽉 채워준 멋진 가수. 

새롭게 시작하는 운동. 그동안 정말 배우고 싶었던 운동인데. 대학원이 끝나갈 때쯔음 여유가 생겨 테니스장을 등록했다. 생각보다 어려운 운동이지만 즐겁게 배우고 있다. 내가 기대하던 꿈 중에 함께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있다. 이건 호치민에서부터 예훈언니와 듀크오빠가 함께 테니스를 치며 건강하고 건전하게 시간을 보내는 부부를 보며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는 욕심이 강해졌던 것 같다. 만약 결혼을 한다면 함께 즐기는 운동이 하나 정도는 겹치는 사람과 하고 싶다. 

연말에 즐겼던 콘서트도 너무 좋았다.

새로운 도전이었던 앞머리 자르기. 좀 더 어려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없었던 앞머리가 생기니 관리하는 것도 힘들지만 뭔가 색달라보이는 맛이 있는 것 같다. 20대 초반 학생들이랑 있어도 정말 대학생 같고..^^?..

20대의 끝자락 내 모습. 이렇게 정리를 해 보니 많은 사진들 중 몇 개를 골라 글을 쓰는 데에 시간이 참 오래 걸렸는데, 또 쓰고 보니 이렇게 짧은 글로 내 10년 인생을 단정짓는 게 허무한 것 같기도 하고. 열심히 산 것 같으면서도 더 열심히 살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도 들고. 스쳐간 인연들 중 나에게 독이 되었던 인연들은 정리를 잘 한 것 같다. 그 당시엔 힘들었어도 말이다. '건강하고 건전한 삶'은 여전히 내 삶의 모토다. 30대는 안정을 찾되 도전을 기피하지 않는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그 어떤 상황에도 소중한 나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30대의 목표는 '독립'이다. 두려워했던 운전도 도전을 하고 싶다. 나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 가정을 이룰 수도 있겠지만 굳이 결혼이 목표는 아니다. 함께 하면 더 행복할 것 같은 사람과 가족이 되고 싶다. 아직은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결혼에 대해 현실과 타협할 생각은 없다. 어떤 상황이든 더 단단해지고 이겨낼 수 있는, 스스로 해결해낼 수 있는 강한 힘을 키워나가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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